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한민족의 염원 담아
북한강, 그리움을 안고 흐르다
 
북한의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남으로 흘러 북한강을 이루고 또 그렇게 흐르고 흘러 한강을 이루며 이윽
고 저 먼 바다로 나아가 망망대해를 이룬다. 강물은 그렇게 이념도 사상도 뛰어넘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
은 분단의 양끝을 흐르며 반으로 잘린 국토의 허리를 따스하게 끌어안는다.

글 백은영 사진 이경숙
 
a01.jpg
평화의 댐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와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걸쳐 있는 댐으로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국민성금까지 모아 건설된 평화의 댐은 지금도 여러 논란을 낳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평화’를 염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a02.jpg
 
 
a03.jpg
출렁다리(두타교) 두타연과 두타교를 품은 백석산. 두타교에서 바라보는 곳곳마다 흰 돌로 된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한 풍광을 자랑한다.
 
a04.jpg
두타연 마라도와 독도 등 우리 땅의 꼭짓점을 연결하면 만나는 곳이라고 하여 국토정중앙 ‘배꼽’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군 민간인 출
입통제선 안에 있어 천혜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두타연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이 폭포가 되어 소(沼)를 이룬 곳이다.
 
    

 
일행이 북한강을 답사 장소로 정하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위치한 두타연이다. 두타연계곡(頭陀淵溪谷)을 필두로 북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을 이루는 지점인 양수리까지, 그 사이에 만나는 풍경이 글의 소재가 되고 그 풍경이 간직한 세월이 이번 답사의 이야기가 됐다.
 
두타연에서 금강산까지 32km
 
두타연(頭陀淵)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통선 북방에 위치한 연못이다. 금강산으로부터 내려온 물이 하나를 이룬 곳. 1000년 전 고려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타사라는 절이있던 곳이라 하여 두타라는 이름을 가져왔다. 세상의 모든 번뇌와 욕심을 씻어낸다는 의미의 두타.
서울에서 한참을 달린 끝에 만난 두타연의 풍광은 과연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을만했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바위 사이로 떨어지며 형성된 폭포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주변을 감싸고 있는 족히 20m는 되어 보이는 암석은 마치 그 아래로 형성된 소(沼)를 보호하는 듯했다. 그 병풍 같은 암석의 한쪽(폭포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보살이 덕을 쌓는다’는 의미의 보덕굴이다.
 
a05.jpg
평화를 기원하는 편지 두타교를 건너 만나게 된 풍경이다. 저마다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메시지가 민통선 안에 하나 둘 늘어간다. 늘어가는 메시지만큼 평화의 그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두타연에서 몸을 돌려 뒤돌 돌아서면 출렁다리로 불리는 ‘두타교’가 보인다. 과연 저 출렁이는 다리를 가로질러 건너면 번뇌가 사라질까. 아니면 세상의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을 만큼 내면의 키가 한 뼘 정도는 자라있을까. 두타교를 건너며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는 것을 보니 해탈의 길이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허나 두타교에서 바라본 두타연의 풍광은 더욱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백석산의 아름다움이 가을볕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반짝였다. 흰 돌로 된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안긴 곳이 바로 이곳 두타연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두타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한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방산면 평화누리길 이목정안내소 또는 동면 평화누리길 비득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한 후 신분증을 맡기면 위치추적목걸이(태그 출입증)를 건네준다. 일행은 이목정안내소에서 출입절차를 밟아 태그 출입증을 목에 걸고서야 민통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위치추적이 가능한 목걸이를 패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두타연 전 지역이 지뢰지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정된 경로 외의 구역은 절대 출입금지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곳이자,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더욱이 두타연의 풍광에 심취한 나머지 앞선 일행을 놓쳐 막다른 길로 가던 기자를 향해 다가온 군인이 던진 한마디 말은 겪지도 못했던 전쟁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쪽으로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그 한마디 말에 나도 모르게 “안 돼요. 저 살아야 해요”라고 웃지 못 할 화답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휴전 이후 50여 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곳이라 원시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두타연. 대자연이 빚어낸 보물을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이 보호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함이 지금 우리 조국의 현실인 것이다. 그렇게 두타연을 따라 지정된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금강산 가는 길이 나온다. 금강산까지 불과 32km밖에 안 된다고 하니 참으로 가깝고도 먼 곳이다. 
 
a06.jpg
신선봉 울업산은 청평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기에 제격일 뿐 아니라 산 자체가 숨겨진 명산이다. 신선봉은 바로 이 울업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381m다.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고 해서 신선봉으로 불린다.
 

 
a07.jpg
신성봉 정상 표지석
 
일곱 고개 넘어 ‘신선봉’ 정상에 오르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호명리 오대골과 설악면 회곡리 가래골 사이의 북한강 좁은 수로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등장한 청평호는 주위의 산과 호반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호수 주위에 호명산(虎鳴山)과 울업산(蔚業山) 등이 둘러싼 절경은 가평 8경의 제1경인 청평호반(淸平湖畔)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청평호 북쪽의 의암호, 소양호, 춘천호, 파로호 등지의 어류들이 북한강을 따라 내려와 서식하면서 낚시터로도 유명한 곳이다.

답사 일행은 청평호를 둘러싼 산 중 울업산에 오르기로 했다. 청평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기에 제격일 뿐 아니라 산 자체가 숨겨진 명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일행은 아니 일행 중 몇몇은 울업산의 최고봉 신선봉까지 해발 381m로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허나 이게 웬걸. 고개 하나 넘어 다 왔나 싶으면 눈앞에 언덕이 또 하나 보이고, 이제 다 왔나 싶어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목적지를 바라보면 아직 멀기만 했다. 중간 중간 전망대가 보이면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전경을 사진에 담으랴, 눈에 담으랴, 마음에 담으랴 분주하다가 아직도 재 너머 보이는 신선봉을 향해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다른 산들에 비해 언덕처럼 낮아 보이던 해발 381m의 ‘신선봉’은 쉽게 그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선촌리 쪽에서 시작해 신선봉에 이르기까지 총 7개의 봉우리를 넘어서야, 아니 정복하고서야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를 넘을 때 만났던 뱀까지 포함하면 신선봉은 참으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울업산과 신선봉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일찍이 서울의 삼각산과 이곳의 울업산이 백두산을 출발해 조선국의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가 삼각산이 먼저 한양을 발견하고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울업산이 울면서 돌아섰는데 이곳 설악에 와보니 이곳도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이라고 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산이 울었다고 하여 울업산, 그 산기슭 마을은 도읍지에 형성된 마을이라 한양부라 부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울업산의 최고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하는데 옛날에 신선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며 놀던 곳이라 하며, 지금도 신선들이 놀던 자리로 추측되는 구덩이가 파헤쳐진 곳이 있다.”

과연 정상에 오르니 그 옛날 신선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며 놀던 곳답게 돌로 만든 장기판이 놓여있었다. 가쁜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정상에서 바라본 청평호의 풍경은 수려했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평온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가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신선봉이 있는 곳이 송산리, 정상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고성리(高城里), 뒤편으로는 선촌리(仙村里) 그 이름도 범상치 않다. 이곳 가평 특히 고성리 쪽은 북한강과 홍천강이 S자 모양(태극무늬)을 이루며 감싸 안는 형국이라 태평의 기운이 흐른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금강산으로부터 발원한 물이 철책을 따라 흘러 북한강을 이루고 가평에 이르러 마을을 끌어안으며 평화로움을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지나갔다. 그 무엇도 거스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한 데 어우러져 태평을 누리는 날이 하루속히 도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 다시 일곱 봉우리를 넘어 산을 내려왔다.
 
a09.jpg
두물머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兩水里)에 있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는 뜻에서 합수머리로 불리기도 한다. 왼쪽에 보이는 키가 조금 더 높은 나무가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다.
 

 
남과 북이 만나는 그곳 두물머리

드디어 남과 북이 만났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兩水里)에 있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는 뜻에서 합수머리로 불리기도 한다. 북과 남의 두 강이 어우러져 한강으로 흐르는 지점을 뜻하기도 하는 이곳은 자타공인 최고의 출사지로 꼽히기도 한다. 그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두물머리지만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와 황포 돛단배가 그 운치를 더 하고, 일교차가 심한 봄, 가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물이 합쳐져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는 이곳은 원래 매우 번창하던 나루터였다.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였기에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해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자 어로행위 및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됐다.

댐의 건설과 함께 나루터로서의 기능은 정지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사람들이 커다란 액자틀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 ‘두물머리’가 그들 위로 배경처럼 내려앉는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한 오랜 기다림에도 지친 기색 없이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난다. 딱 지금처럼만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휴전. 우리 민족 앞에 놓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과거이자 개척해야 하는 미래이기도 하다. 비록 너무도 오랜 세월 우리를 기다리게 했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평화와 통일은 꼭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가올 미래를 설렘으로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두물머리에서의 추억을 남기고자 그 오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금강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흐르고 흘러 남한강과 만나 하나를 이루고 저 망망대해로 내달리는 그 긴 기다림처럼, 우리 민족 또한 다시금 하나 되어 세상을 품을 그날을 그려본다. 바다로 나아가 다시 만날 두 줄기 강물을 바라보면서….